나는 대체적으로 계획한대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. 나의 MBTI는 ENFP인데, 4번째 글자가 P(Percieve: 인식형)인 사람은 J(Judge: 판단형)에 비해 즉흥적인 삶의 양식을 추구한다고 한다. 그래서일까,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갑갑하고, 겨우 겨우 세운 계획대로 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. 한번씩 스케줄러/플래너 도구(실물이든 앱이든)를 호기롭게 구매할 때가 있었는데, 그 기세에 비해 사용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.
이런 나에게 갓생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조깅을 하고, 건강식을 먹고, 틈틈히 독서를 하는 그런 게 아닌, 그저 최소한은 내일을, 조금 더 멀리 보면 일주일을 미리 계획하고, 하루하루 그 계획대로 (가급적 수정 없이) 살아가는 것이다.
군대에 있을 때는 굉장히 편했다. 내가 손 댈 수 없는 나의 생활계획표가 하달되고(물론 옆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), 훈련 계획, 무슨 무슨 계획이 일일, 주간, 월간, 연간으로 알아서 다 짜져있다. 나는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되는 삶이었다. 혹자는 자유를 박탈당해 답답하다고 하지만, 나는 솔직히 이동/통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만족스러웠고, “고민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했다.
하지만 내 나이 서른하고도 몇살.. 어언 직장인 7년차이자 갓난쟁이를 기르는 아빠이면서, 우리집의 청소/요리/장보기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사를 도맡은 사람이기에, 더 이상 즉흥적으로 살 수는 없는 법. 인스타와 유튜브를 통해 소위 갓생 좀 산다는 사람들에게 팁을 얻었다. 그 중에 나에게 와 닿은 것은 “아주 작은 성공부터 하라”는 것.
나라는 인간은 예로부터 일 벌이기를 매우 좋아했으며, 그 일의 스케일이 클 수록 마침률(?)은 상당히 낮았다. 나의 알량한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시시하고 없어보이게 끝맺을 지언정, 안 하고 말지의 심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. 그래서 이번엔 “계획적으로 살기”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아주 작게 쪼개보기로 했다.
갓생과 멀리 한 기간만큼 오래 접속하지 않았던 노션을 켰고, 아래와 같은 단순한 Task들로 구성 된, 시간과는 전혀 상관 없는 To-do List를 만들었다. 마침 노션에서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“습관 트래킹” 템플릿이 있어 그걸 일부 수정해서 사용했다. 나라는 인간이 굉장히 웃긴 게, 듀데이트를 일부러 안 만들면 만들었지, 듀데이트가 있으면 미루고 미루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끝낸다. 그래서 아침이든 저녁이든 상관 없이 그 날 안에 끝내기만 하면 되는 컨셉으로 시작해보고자 한다.
정말 쉽고 하찮아 보이겠지만, 나는 오후 11시 반이 넘어서야 푸쉬업 10개를 했고, 11시 40분쯤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. 결국 이렇게 첫 날은 성공했다. 밤 12시까지 미루고 미루다 보니, 어느새 15일이 내일이 아닌 오늘이 되어버린 것은 안비밀. 아무튼 이렇게 2023년의 첫 포스팅을 마친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