안방 베란다에다 꾸민 내 작업실을 오랜만에 정리하다가, 구석에서 굴러다니는 리코GR2를 만났다.
그래 다시 일상의 기록을 시작해야지, 하고 충전선을 겨우 찾아내어 충전기에 꽂아둔 지 몇십분.
이쯤되면 켜지겠지 하고 전원을 켜니 아니나 다를까, 날짜와 시간 입력 창이 떴다.
너무 오래 방전시켜둔 탓이다.
앨범 버튼을 누르니 가장 마지막에 찍은 사진이 1월.. 이진이가 겨우 100일 쯤 됐을 때다.
소파에 앉은 이진 엄마의 얼굴에 이진이도 자기의 얼굴을 맞대고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고,
역시나 그 옆에 보이는 건 진주였다.
화살표 버튼을 왼쪽으로 몇번 더 눌러 앞의 상황을 보니, 누나(이진엄마)가 소파에 앉자마자 쪼르르 달려온 것이었다.
찍을 땐 몰랐는데, 아니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,
지금 사진 속 진주를 보니 차분히 엎드려 자기가 예쁨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.
유일한 베이비로서 집안의 모든 사랑을 늘 독차지 했고,
누나와 내가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질투쟁이였던
그런 진주가 이진이를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있는 게 보였다.
나에겐, 우리에겐 진주와 이진이 둘 다 똑같이 아기였는데,
이진이가 어린이가 되어도 진주 너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아기일텐데
멍청한 강아지 너는 그것도 모르고 너보다 더 아기인 존재에게 양보해주고 있었구나.
사진 속 너를 몇번이나 만졌단다.
딱딱한 플라스틱이지만, 오빠 손엔 너의 따뜻한 온기와, 윤기나는 털이 느껴졌어.
주책 떨어서 정말 미안한데,
오늘은 좀 많이 보고프다 진주야.
꿈에 좀 나와주렴. 내새끼, 내 강아지 이진주.